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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 610 민주항쟁 그날을 기억하자!

moonbows 2017. 6. 1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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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처럼 민주주의를 누릴수 있는건 아마도 그들이 흘린 피와 노력이라고 생각이 든다. 시간은 흘러도 점점 사람들 기억속에서 잊어지려고 하고 있지만, 우리가 기억을 해야하는 사람 중 한명이 바로 이한열 열사라고 한다. 그 젊은 나이에 민주항쟁을 위해서 가장 선봉에 섰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최루탄에 맞아 사망을 하게 된다. 나 또한 그의 이름은 수없이도 들어 봤지만, 그날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된 계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이든다. 6월 9일이 30주기 추모제가 열렸던 날이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 약 300여명이 참석하여 그날의 기억과 함께 과거의 고통을 여전히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항쟁 운동에서 많은 젊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고,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하다.

이날은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우 의원의 추모사에서 그날 자신이 물러서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생명이 다하도록 전두환과 싸우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한열이가 쓰러지지 않았을거라고 생각을 했다. 또한 그렇게 한열이가 쓰러지고, 많은 학생들이 다음날 시청에서 경찰이 와서 물러서지 말자고 결의를 했다고 한다. 


6월의 항쟁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지금처럼 빠르게 오지 못했을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민주주의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아픈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최근 공개가된 내셔널지오그리픽 사진기자 네이션 벤 의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바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모습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이종찬의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우리나라 기자들이 이런 사진을 찍을수가 없던 이유가 아마도, 정부의 압력과 불법적인 체포로 인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역사에서나 어디에서나 과거를 잊고 살수는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유가 바로 반복이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의 반복이 되기 때문에 과거를 바로 알고, 그때의 기억을 디딤돌 삼아 보다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한열의 사망으로 인해서 민주국장이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이 치뤄졌다. 이때 유명한 사진이 등장하는데 지금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우현씨도 장례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이날 추모 인파는 서울 약 100만, 광주 약 50만 명 등 전국적으로 모여들어 추모가 이어졌다. 


이날 대한민국 현대사의 명연설이 등장 한다. 바로 문성근의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님의 연설이다. 바로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26인의 열사들의 이름을 부른것이다. 이 연설은 즉흥적으로 이뤄진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그 효과는 엄청났으며, 인파는 거의 100만 명이 모이기 시작하며, 전두환 퇴진과 청와대 진격을 외치게 된다.


여전히 이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통해서나, 방송을 통해서 들었던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실을 왜곡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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